더 에이트 쇼 리뷰|2024 넷플릭스 시리즈 추천

2025. 7. 10. 18:13리뷰/드라마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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개요

 더 에이트 쇼는 생존 게임을 가장한 자본의 실험장이자, 인간이 인간을 소비하는 리얼리티 쇼다. 공간은 하나고 룰은 단순하다. 참가자 8명이 한 건물에 갇힌다. 10초마다 일정 금액이 쌓이고, 그 돈은 참가자들 각각의 몫으로 차등하여 쌓이게 된다. 조건은 하나다. 쇼가 계속되어야 한다. 즉, 누군가 관찰하고 있다는 전제 아래, 참가자들은 끊임없이 뭔가를 ‘보여줘야’ 하고, 그게 재미있을수록 쇼의 수명은 연장된다. 구조는 간단하지만, 문제는 인간이다. 8명의 성격, 가치관, 상황이 충돌하며, 협력과 배신, 윤리와 폭력이 번갈아가며 일어난다. 이 드라마는 그 과정을 하나씩 지켜보게 만든다. 누구도 선하지 않고, 모두가 악하지 않다. 살아남기 위해 조금씩 타락하고, 정당화를 반복한다. 더 에이트 쇼는 이 울타리 안에서 시작된다.

넷플릭스 드라마 추천 더 에이트 쇼

감독 소개|한재림 풍자의 달인(또간집 아님)

 한재림 감독은 <더 킹>, <관상> 등 작품에서 사회 시스템과 인간 심리를 결합하는 연출에 있어 특별함을 증명했다. 특히 권력이나 공포를 다룰 때, 인물의 입체적인 심리 변화를 깊게 파고드는 방식이 특징이다. 이번 더 에이트 쇼는 그가 처음으로 연출한 넷플릭스 시리즈인데, 영화보다 더 치밀하고 날카롭다. 기존 연출 스타일에 더해 원작 웹툰 특유의 리듬감을 잘 섞었고, 8부작이라는 짧은 호흡 속에서 주제와 캐릭터의 밀도를 끝까지 끌어올렸다. 군더더기 없이 몰입하게 만든다. 현실 세계에서 통용되는 자본, 노동, 계급의 언어들을 드라마 속에 은유로 심어두되, 설명하지 않고 행동으로 보여주는 방식이다. 전작보다 더 침착하고, 잔인하다. 직접적인 폭력보다 무감각함으로 인한 잔혹함을 선택한 것도 인상적이다.


등장인물 소개

 이 드라마에는 주인공 '배진수'¹ 외의 이름이 거의 등장하지 않는다. 참가자들은 1층부터 8층까지, ‘층’으로만 호명된다. 계급처럼 보이지만 사실 그것보다 더 은밀한 상징이 있다. 권력 구조, 행동 양상, 심리 상태까지 층마다 다른 양상으로 표현된다.
 3층(류준열)은 이야기의 중심에 있다. 관찰자이자 해설자이고, 동시에 가장 늦게 무너지는 일반 인격의 주인으로 이 쇼의 윤리적 좌표를 설정하는 인물이다. 8층(천우희)는 쇼의 ‘권력’을 잡은 인물이다. 잔인하고 이기적이지만, 끝까지 흔들리지 않는 자기 확신으로 움직인다. 재미와 자극을 이해하고 활용한다. 7층(박정민)은 분석적이고 냉소적인 인물이다. 누구보다 빠르게 룰을 파악하고, 쇼를 콘텐츠로 바라보는 시선을 관객에게 던진다. 이 선하고 이성적인 면모는 자기 자신마저 대상화하며 결국 극을 파국으로 치닫게 한다. 6층(박해준)은 초반에 완력만으로 주도권을 잡지만, 8층과의 야합과 그 권력의 유지를 위해 '실무자'로 내려앉는다. 5층(문정희)는 중재자이자 어른의 역할을 끊임없이 시도하지만, 구김 많은 그녀는 파국의 방아쇠가 될 뿐이다. 4층(이열음)은 열등감과 허영의 화신이다. 2층(이주영)은 '프로'로 완력에 저항하는 기술가로 시스템에 저항하지만, 끝내 흐름에 휩쓸린다. 1층(배성우)는 가장 취약한 위치에 있지만, 결국 극을 가장 뒤에서 추돌하는 조커의 역할을 가진다.
 이 인물들은 모두 현실의 어떤 계층을 상징한다. 누가 착한 사람인지 묻는 게 의미 없을 정도로 기묘하며, 모두가 현실적인 판단을 반복하지만 구조에 의해 이 인물들은 모두 파국에 닿는다.


줄거리 요약

 총 8명의 참가자가 ‘쇼’에 자발적으로 지원하고 선발된다. 이들은 개인당 한 층씩, 1층부터 8층까지 선착순으로 배정받고, 그 계층은 우발적으로 정해진 채 고정된다. 건물은 하나의 실내 구조지만 층마다 환경과 수익이 다르고, 0시부터 8시까지는 의무적으로 각자의 방에 거주하며 그 외 시간에는 '광장'에 나갈 수 있다. 이 쇼의 가장 큰 특징은 ‘시간이 곧 돈’이라는 구조다. 매 10초마다 정해진 금액이 누적되며, 참가자가 생존한 만큼 수익이 분배된다. 하지만 이 시스템은 단순히 시간만 견디면 돈이 쌓이는 게 아니라, 누군가 지켜보고 있다는 전제에서만 작동한다. 쇼의 시청자들은 ‘재미’를 원하고, 참가자들은 제한 시간을 늘리기 위해 점점 더 자극적인 행동을 하게 된다.
 처음엔 모두가 조심스럽다. 하지만 어느 순간부터 제한 시간이 늘어나는 패턴을 눈치채게 되고, 참가자들은 서로 갈등하고 충돌하기 시작한다. 8층은 계층상 가장 높은 수익을 받는 위치에 있고, 구조적으로 다른 층보다 권한이 크다. 이를 바탕으로 8층은 식량과 생필품을 통제하고, 낮은 층을 강제로 조율하기 시작한다. 6층은 8층과 손잡으며 쇼를 장악하고, 이와 결탁한 일부를 제외한 나머지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층 간 불균형은 곧 분노로 이어지고, 참가자들은 ‘자극’을 만들어내기 위해 윤리적 경계를 허물기 시작한다.
 후반부에 들어서면서 쇼는 완전히 뒤틀린다. 참가자들 간의 분열과 연대가 신원 미상의 관객들에게 재미가 되고, 저항과 지배가 반복되고, 인간성이 쇼를 끝내려 하지만 이기심이 이를 막아선다. 결국 1층은 쇼의 지속을 위해, 또는 삶의 단절을 위해 극단적인 퍼포먼스를 시도하고 중상을 입는다. 이후 3층은 카메라를 파괴하며 쇼를 종료시키고, 출입문이 개방되지만 1층은 사망한다.
 쇼가 끝난 뒤, 3층은 '1층'의 장례식을 치루고 모두의 이야기가 끝난다. 그 뒤 7층은 이 경험을 토대로 시나리오를 썼고, 쇼가 다시 시작될지도 모른다는 여운을 남긴 채 이야기는 끝난다.


작품 해석

 더 에이트 쇼는 처음부터 끝까지 구조의 드라마다. 계층, 시간, 감시, 관찰자, 통제, 폭력. 이 드라마가 던지는 모든 장치는 특정한 목적을 가진 시스템 안에서 작동한다. 참가자 8명은 각자 다르게 보이지만, 그 안에서 작동하는 인간의 심리는 비슷하다. 처음엔 조심스럽게 임하지만, 모두가 곧 깨닫는다. 누군가 지켜보고 있고, 그들이 지루해하면 쇼는 멈춘다는 것. 그걸 눈치챈 순간부터 인간은 무너지기 시작한다. 폭력을 시작한 건 8층도 아니고, 6층도 아니다. 사실은 구조 그 자체다. 상층으로 갈수록 수익은 커지고, 권한도 많아진다. 8층은 그걸 이용해 물자를 통제하고, 자신의 지위에서 무엇을 할 수 있는지 끊임없이 실험한다. 여기서 주목해야 할 건, 폭력이 처음부터 나쁘게 등장하지 않는다는 점이다. 처음에는 분위기 띄우기였고, 장난이었고, 쇼를 위한 연기였다. 하지만 시청자들의 반응이 좋자, 참가자들은 점점 더 과감하게 움직인다. 자극이 돈을 만들고, 돈이 생존을 보장한다. 그렇게 쇼는 재미를 위해 사람을 부수는 방향으로 흘러간다.
 이 드라마의 공포는 그래서 시청자에게 있다. 드라마는 끊임없이 물어본다. 너는 왜 계속 이 장면을 보고 있냐고. 누군가 고통받고 있는 걸 알면서도, 그 장면을 넘기지 못하고, 스킵하지 못하고, 도리어 눈을 더 크게 뜨고 바라보는 게 바로 우리니까. 이 작품이 특별한 이유는 폭력 자체보다도 폭력이 재생산되는 방식을 정밀하게 설계하고 있다는 점이다. 상층은 권력을 가졌고, 하층은 반항할 힘이 없다. 어느 순간 8층과 6층이 손을 잡고 쇼를 통제하기 시작하고, 나머지는 선택을 강요받는다. 반항할지, 침묵할지, 아니면 조력자가 될지. 그 안에서 3층은 줄곧 균형을 고민한다. 타인의 고통을 외면하지 않으면서도, 스스로 살아남아야 한다는 현실 앞에서 자꾸만 흔들린다.
 인간은 선천적으로 악하지 않다. 하지만 생존의 조건이 누군가의 파멸이라면, 망설임 없이 버튼을 누른다. 이 작품은 그걸 가감 없이 보여준다. 누가 먼저 나빴냐고 묻는 건 아무 의미 없다. 누가 먼저 사람을 때렸고, 누가 먼저 음식을 감췄고, 누가 먼저 고함을 질렀고, 누가 먼저 도망쳤냐고 묻는 순간, 이미 쇼의 룰 안에 들어와 있다는 뜻이다. 진짜 공포는, 모든 행동이 정당화될 수 있다는 믿음이다. 시청자가 원하는 대로 움직이면 제한 시간은 늘어난다. 제한 시간이 늘어나면 돈이 쌓인다. 그리고 사람은 그 돈으로 다시 돈을 벌고, 바깥에서의 생존을 유지한다. 이 드라마는 그걸 순환 고리처럼 반복하면서, 끝내 그 시스템을 스스로 무너뜨린다. 3층은 끝까지 사람을 포기하지 않으려고 애쓴다. 하지만 시스템은 그를 버린다. 그리고 그는 결국 마지막 카메라를 깨뜨린다.
 1층의 선택은 가장 충격적인 장면이기도 하다. 생존과 퍼포먼스의 경계에서, 그는 자신의 육체를 바쳐 쇼를 완성한다. 누군가는 그게 죽음이라 했고, 누군가는 예술이라 했다. 하지만 그건 중요하지 않다. 그는 시스템이 허용한 한계 그 끝까지 갔다. 그 앞에서 누가 옳았고, 누가 틀렸는지는 남은 사람들만이 판단할 수 있다. 더 에이트 쇼는 그렇게 끝난다. 3층은 장례식을 치르고, 7층은 시나리오를 쓴다. 쇼는 끝났지만, 다시 시작될 수도 있다는 암시를 남긴다. 이 지점에서 드라마는 우리에게 다시 묻는다. 이 이야기를 보고 있는 너는 지금 무슨 감정을 느꼈냐고. 자극이었냐고, 회한이었냐고, 아니면 아무 생각 없었냐고.


총평

 처음 이 드라마를 보기 시작했을 땐 그냥 웹툰 원작 드라마겠거니 했다. 설정이 독특하긴 했지만, 이미 원작에서 경험한 구조였고, 익숙한 진행일 거라 생각했다. 하지만 2화, 3화 넘어가면서 점점 이상해졌다. 캐릭터가 이상한 게 아니라 분위기가. 말하는 속도, 행동하는 방식, 눈빛이 점점 어두워지고, 인물들의 몸이 굳어지며, 말수가 줄어든다. 그리고 어느 순간, 침묵이 이 드라마의 주인공이 된다. 말하지 않아도 아는 구조. 설명하지 않아도 느껴지는 위기. 그게 <더 에이트 쇼>의 진짜 힘이었다.
 이 드라마는 자본주의와 감시 사회, 계급 구조와 인간 본성이라는 무거운 주제를 다루지만, 절대 무겁게 말하지 않는다. 오히려 굉장히 가볍게 툭툭 던진다. 참가자들이 서로에게 가하는 말 한 마디, 지나가는 눈빛, 자잘한 행동 하나하나가 무섭도록 현실적이다. 8명이 서로를 망가뜨릴 때, 그건 연기가 아니라 다큐멘터리처럼 보인다. 카메라가 흔들리고, 음향이 끊기고, 불빛이 꺼질 때마다 현실 같은 느낌이 든다. 이게 진짜일 수도 있다는 착각. 그리고 그 착각은 점점 믿음으로 바뀐다. 우리가 사는 현실도 사실 그다지 다르지 않다는 걸 이 드라마는 꾸준히 상기시킨다.
 배우들의 연기도 좋았다. 특히 류준열은 감정을 너무 과장하지 않고 담백하게 전달해서 더 와닿았고, 천우희는 이 역할을 무섭도록 잘했다. 폭력적인 장면이 많지도 않았는데, 말투 하나, 표정 하나로 충분히 사람을 짓누를 수 있다는 걸 증명했다. 박정민도 인상 깊었다. 가장 전략적인 캐릭터를 연기하면서도, 그게 어느 순간 외로움으로 변하는 장면이 깊이를 만들었다. '극'을 위해 '인물'이 소비되지 않는 이 구조가 캐릭터를 ‘살아있는 사람’처럼 느끼게 했다.
 <더 에이트 쇼>는 이야기가 끝난 뒤에야 고민이 시작되는 드라마였다. 엔딩 크레딧이 올라가도 쉽게 넘기지 못하게 만드는 힘이 있었다. 아마도 그건, 이 드라마가 단순히 ‘보여주기 위해’ 만들어진 쇼가 아니라, ‘생각하게 만들기 위해’ 설계된 실험이었기 때문일 거다. 우리가 봤던 그 모든 화면들도, 어쩌면 누군가에겐 하나의 쇼일지 모른다. 그렇게 생각하니, 모든 게 조금 불편해지고, 조금은 낯설어진다. 그리고 그런 불편함을 남겨두는 드라마가, 결국 가장 오래 기억에 남는다. 더 에이트 쇼는 그런 작품이었다.


 각주¹ : 배진수는 원작 웹툰 머니게임, 파이게임의 작가 이름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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