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 6. 28. 22:22ㆍ리뷰/영화
나홍진이라는 이름은 한국 스릴러를 대표하는 이름 중 하나로 자리 잡았다. 그의 영화는 단순한 범죄 영화나 공포영화를 넘어 인간 내면의 어둠과 복잡한 감정을 다룬다. 이 글에서는 추격자, 황해, 곡성, 랑종 등 대표작을 중심으로 나홍진 감독이 어떤 연출 특성과 이야기 구조를 가지고 있는지 살펴본다. 그리고 그의 영화가 왜 많은 사람들에게 깊은 인상을 남기는지 알아본다.
감독 소개
나홍진은 2008년 '추격자'로 데뷔하면서 단번에 주목받은 감독이다. 이 작품은 단순한 범죄 스릴러처럼 보이지만, 캐릭터 간의 관계와 리듬감 있는 연출, 인물의 도덕적 회색 지대를 아주 정밀하게 묘사하는 등 방식으로 깊은 여운을 남겼다. 이후 '황해', '곡성', 그리고 제작에 참여한 '랑종'까지 꾸준히 인간 내면의 공포, 비이성, 본능 여러 서사 방식을 사용해 탐구해왔다. 그의 영화는 대부분 긴장감, 정체성 혼란, 감정적 붕괴라는 공통 키워드를 포함하고 있다. 특히 관객에게 정답을 주지 않고 질문을 던지는 방식이 특징이다. 그래서 그의 영화는 보고 난 후에도 머릿속에 오래 남는다.
대표작 목록
- 추격자 (2008)
- 황해 (2010)
- 곡성 (2016)
- 랑종 (2021, 제작 참여)
이 네 작품은 장르적으로는 스릴러와 공포를 기반으로 하고 있지만, 전부가 단순한 장르 영화라고 보기엔 어렵다. 나홍진의 영화에는 항상 설명되지 않는 무언가가 존재하고, 그로 인해 관객은 ‘왜?’라는 질문을 붙잡게 된다. 이 질문의 실마리를 찾기 위해 그의 세계를 키워드 중심으로 해석해본다.
1. 추격과 도주의 리듬감
추격자와 황해는 제목부터 ‘움직임’을 전제로 한다. 추격자에서는 전직 형사가 사라진 여성을 찾아 연쇄살인범을 추적한다. 이 영화에서 중요한 건 단순한 경찰과 범인의 싸움이 아니라, '시간'과 '공포'가 조여드는 방식이다. 황해 역시 쫓기는 주인공이 청부 살인자로 고용되면서 도망과 살인을 반복하게 된다. 둘 다 움직임은 많지만, 정작 인물들은 그 어디에도 도착하지 못한다. 현실적으로도 탈출이 불가능한 구조 속에서, 관객은 등장인물과 함께 절망에 잠긴다. 추격자에서는 노골적인 도시의 폐쇄성, 황해에서는 국경과 계급, 언어의 장벽이 이런 감정을 강화한다.
2. 인간의 본성에 대한 회의
나홍진 영화에 등장하는 인물은 대부분 '옳은 일을 하려다' 망한다. 경찰도, 가장도, 무당도, 모두 자기가 믿는 걸 끝까지 밀어붙이다가 참혹한 결과를 맞는다. 특히 곡성에서는 이 흐름이 극대화된다. 주인공 종구는 딸을 구하려 하지만, 그의 결정은 상황을 악화시키는 방향으로만 흘러간다. 황해에서도 마찬가지다. 김윤석이 연기한 조직 보스는 결국 인간을 믿지 않고, 자신만의 방법으로 움직인다. 이처럼 나홍진의 영화는 도덕이나 선악보다 인간의 어쩔 수 없는 본능, 불안, 자기중심성을 보여주는 데 집중한다.
3. 초자연과 현실의 경계
곡성은 이 모든 주제를 하나로 묶는 정점 같은 작품이다. 처음엔 전형적인 시골 마을 살인사건처럼 시작되지만, 곧 좀비, 무당, 제사, 귀신 등 초자연 요소가 전면에 등장한다. 하지만 이 초자연이 현실을 대체하진 않는다. 오히려 초자연은 인물들의 심리를 드러내는 수단이다. 와타나베라는 외지인은 정말 악귀일 수도 있고, 아닐 수도 있다. 무당의 제사 장면은 설득력 있게 구성되지만, 결과적으로 틀린 정보가 될 수도 있다. 이 경계에서 관객은 영화 안의 인물처럼 혼란을 겪는다. 해석할 수 없도록 설계된 스토리지만, 그래서 더 현실처럼 느껴진다.
4. 느린 호흡과 시각적 연출
나홍진의 연출은 빠르지 않다. 특히 곡성과 랑종에서 이 점이 극명하게 드러난다. 사건은 조금씩 일어나고, 인물은 항상 상황을 한발 늦게 파악한다. 그 사이 감독은 공간과 사운드, 침묵을 활용해 공기를 조성한다. 대표적인 예가 곡성의 장독대 장면이다. 정적과 화면 구성이 주는 공포는 단순한 점프 스케어나 음악보다 훨씬 오래 지속된다. 랑종은 다큐멘터리 스타일로 찍혀 더 사실적으로 보이는데, 이건 영화 전체의 몰입감을 높이는 장치로 기능한다. 나홍진은 시각적 이미지와 리듬으로 ‘보이지 않는 감정’을 전달한다.
5. 믿음의 해체
곡성의 핵심은 믿음에 있다. 경찰로서의 직업적 믿음, 아버지로서의 책임감, 무당의 신념, 마을 주민들의 공동체적 신뢰 등 이 영화에 등장하는 모든 갈등은 ‘믿는 대상’이 다르기 때문에 발생한다. 그래서 종국에는 누구도 옳지 않았고, 누구도 완전히 틀리지 않았다는 식으로 이야기가 끝난다. 이런 구조는 종교적 오만, 도덕적 회의, 인간적 좌절 모두를 포괄한다. 이 때문에 곡성은 단순한 공포영화가 아닌 철학적인 질문을 던지는 작품으로 평가받는다.
추천작: 곡성
곡성은 나홍진의 세계관을 가장 집약한 작품이다. 처음부터 끝까지 무언가 설명되지 않은 상태로 이야기를 이끌어간다. 딸이 이상한 행동을 하기 시작하고, 동네에 외지인이 나타난다. 경찰은 이 사건을 범죄로 파악하려 하고, 무당은 귀신으로 본다. 그런데 둘 다 해결하지 못한다. 이 영화의 가장 무서운 점은 그래서 ‘모른다는 사실 자체’다. 무언가 끔찍한 일이 벌어지고 있고, 아무도 그것의 실체를 파악하지 못한다. 곡성은 종교적이면서도 과학적이고, 비극적이면서도 희극적이다. 이것들은 전부 의도된 것이다. 그리고 이 다층적인 구성이야말로 곡성이 나홍진 감독의 필모그래피에서 특히 압도적인 이유다.
총평
나홍진 감독의 영화는 쉽지 않다. 그 안에는 단서와 힌트도 있지만, 절대적 해답은 없다. 그렇기 때문에 반복해서 보게 되는 작품들이다. 처음 보는 사람이라면 추격자나 황해처럼 비교적 장르성이 분명한 작품으로 시작한 후, 곡성으로 넘어가는 걸 추천한다. 마지막엔 랑종을 보면 된다. 이렇게 보면 나홍진 감독의 이야기 구조, 세계관, 정서가 어떻게 진화해왔는지 감 잡을 수 있다. 감상 순서를 정해두고 보기를 추천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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